태엽의 계약—.
오토마타(Automata)
사람이나 동물을 흉내 내어 만든 자동인형.
이어집니다.
웃는다. 그대가 웃는다. 그 웃음의 의미를 파악할 정도의, 감정 프로세스는 없다. 그러니 당신의 생각을 알리가. 당신이 생각한 한낱 소모품의 무생물은 솔직한 미소조차 지어보이지 못하고 가면처럼 당신을 바라볼 뿐이다. 관심이 간다면, 가지고 놀고 싶다면, 손으로 붙잡아 가져오면 그만인. 가판대 위의 인형.
하지만 말야...
그대가 말한다. 너가 말한 것들은 꿈이라고. 지성체와 다를 바 없는 꿈이라고. 생명체와 다를 바 없는 꿈이라고. 나는 꿈을 꾼다고.
“...그런가. 사라진 데이터를, 나머지 기억의 편린을, 알 수 없는 것들의 진실을 되찾는 것도 정말 꿈이라 말할 수 있다니.”
꿈을 꿀 수 있는 자가 말한다. 그건 꿈이라고. 그렇다면, 이것은 꿈이다. 꿈을 꾸지 못하는 무생물이 어떻게 그걸 감히 반박할 수 있단 말인가. 레이즈는 자신이 당신에게 어떤 흥미를 불러 일으켰는지도 모른 채. 그저 깊게 생각하는 듯 한참을 말이 없을 뿐이었다. 어차피, 감정의 이해란, 어쩌면 획득도. 레이즈 스스로도 원하는 것이니. 그러나 무생물에게 감정을 넣는다는 건, 돌맹이가 스스로 걸을 수 있는 것과 같은. 필시 기적이 필요할 것이다. 이미 일어났을수도 있고.
이질적인 표정, 일부러일까. 그저 당연한 이치일까. 그대의 친절하고 은은한 미소를 마주한다. 그대의 안면 근육을, 위치를 인식한다. 결과는 웃음이고 매치되는 감정은 긍정의 것이다. 그래, 결국 감정 프로세스의 부족. 이것이 기계의 한계. 하지만 레이즈는 그걸 너무나도 잘 알았다. 감정 프로세스가 아직 부족하다는 판단은, 곧 당신의 표정에서 자신이 분석하지 못한 추가적인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기관단총은 무슨 꿈을 꿔야 하나요?
기관단총은 작고 소박하고, 그 무엇보다 개인적인 꿈을 꾼다. 자신의 메모리를 되찾는 꿈을 꾼다. 그리고 기관단총은 그 무엇보다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걸 꿈꾼다. 감히 지성과 생명들도 알지 못하는 모든 감정의 이해를 꿈꾼다.
“이룰 수 있다면, 이루고 싶다. 그대의 말대로 그저 기관단총일 뿐인 나에게는 그렇게까지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유라 해도, 빠른 임무 수행 복귀를 위해 긴급정지 이후 메뉴얼에 따라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거지만.”
방긋, 그대가 웃는다. 진심이라는 것 마냥. 저 웃음이 진실인지 아닌지, 오히려 비소인지. 당신이 말한대로 모든 칭찬이 칭찬은 아니듯, 모든 미소가 미소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설을. 그리고 그대는 아는가? 무생물은 생물이 아니기에,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면부 인식, 입꼬리의 미세한 근육변화 감지. 아무리 일관된 표정을 짓는다 해도, 생명체의 감정이란 건 어떻게든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것이 이해는 아니라 할 지라도, ...못할 건 없다는 거지.
선심인 듯 건낸 말. 꿈을 이루게 도와주겠다는 달콤한 말. 나를 도와주겠다는데, 서로에게 좋은 것밖에 없다는데. 강요도 아니라잖아. 어찌보면 이득밖에 없어보이지만, 보통이라면 덥썩 손을 잡았을지 모르지만, 아쉽게도 그대의 앞에 서 있는 것은 무생물이고, 순간에 휩싸일 충동도 감정도 없었다.
“...판매업에 종사하나?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이 칭찬이 과연 진짜 칭찬일까? 글쎄, 적어도 레이즈는 그렇게 생각하고 뱉은 것이 아닐까? 생명의 양면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지하지도 못하는 것이 입에 발린 말 따위를 꾸며낼 수 있을리가.
“그러니까, 계약을 하자는 건가? 그렇다면 이득이라는 부정확한 표현으로는 계약 조건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득’이라는 애매한 말로 포장하여, 그대가 본인의 이권보다 더 큰 것을 취할지는 모르는 일이지. 설령 별 것 아닌 것일지라도. 상대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목표보다 더 에너지를 쏟을 이유는 하등 없다. 그러니 그대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제시해 봐. 다행이도 눈 앞의 무생물은 당신의 제안을 감정적으로 받아드리진 않을테니. 생명체의 정신적으론 잔악무도한 조건이라도 손익만을 완벽히 계산한다면 충분히 받아드릴것이다. 그래, 당신이 건낸 것은 선심이 아니다. 계약이지. 설령 단순 연민으로 건낸 것이라도, 그 따스함은 느끼지 못한다.
소모품이란 말에도, 천천히 눈을 깜빡거릴 뿐. 당신이 생각한대로 감정이 없는 MPA-53에겐 그저 사실적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대가 속으로 삼킨 말이 무엇이던지, 사실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프로그램에서 2%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0.001%의 변수라도 전체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회로가 된다. 하지만... ”
그대가 말한 것처럼, 그 2%가 가장 중요할 수도 있어. 설령 오류로 생겨난 것이라 해도. 레이즈에겐 감정 프로세서가 있다. 계속 프로세스의 충돌이 일어나고, 단편적인 감정 정보의 인식밖에 하지 못한다 해도. 이미 레이즈는 다른 ‘무생물’과는 거리가 생겼다. 불완전한 2%, 그러나 담을 그릇은 만들어졌어. 그대는 이곳에 무엇을 채워넣게 될까. 기계의 탄생으로 뒤따라오는, 모든 인류가 두려워하는, 그러나 누군가는 꿈꿔왔을 판타지를. 그대는 현실화 시킬 수 있는가.
“...지금 상태에서 실마리조차 잡지 못해. 그 변수가 해답의 열쇠를 쥐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대 말대로 그 2%가, 기관단총의 기능보다 안드로이드의 기능이 우선시되는 지금 목표 상황에 더 유리하다.”
모순이 아니다. 자신은 기관단총이나, 엄연히 안드로이드니까. 자신의 제작 당시에는 기관단총의 목적성이 우선되었을 뿐이고, 그런 용도로 제작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어떠한 도구가 용도 외로 쓰이는 것은 흔히 발생하는 일이지 않나?
악인이 말했다. 사람이란 다 그렇다, 남 좋은 건 못 본다, 타인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이다. 아주 단편적이고 얄팍한 일반화. 이를 통해 자신은 그저, 라며 다른 이들 속에 숨어 회피하고 합리화하고 뒤에 숨을 뿐이라는 건. 감정을 몰라도 기본 회로의 이성적 판단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숨는 이유는 무엇인가? 죄책감? 죄악감? 아니면 그저 뻔뻔한 얼굴로 더 많은 악행을 하기 위한 것인가. 악인도 생명체이기에, 모순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 레이즈에게 또 다른 의문이 떠오른다. 더 알고 싶어졌다. 그대가 보여주는 악의 모든 것, 마주하고 있는 죄와 그것을 대하는 태도까지도.
그대가 큭큭대며 웃는 소리와, 평소와 같은 미소가 무엇이 다른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 무생물은 악인을 마주한다. 악인인 그대 앞에서 얼굴을 찌푸리지도 울지도 애원하지도 경멸하지도 않고. 돌을 던지기 전의 연못처럼. 아주 고요한 무표정으로 그대를 마주한다.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할 수 없다.”
후회할 수 없다. 그래. 후회 또한 과거의 자신의 자책. 감정이 없으니 후회도 없다. 그러니 어쩌면, 설령 후회한다 해도 그 이면에는 후회를 깨달은 기쁨이 있을지도 몰라. 생명체란, 지성체란, 감정이란, 그토록 모순적이니까. 모순적이라고. 그대가 알려주었다. 그러니, 이 무지한 AI에게 그대의 사상을 마음껏 주입해라, 그대의 전부를 알려주고 태엽을 감는다면.
기꺼히 그대를 위해 춤추고, 노래하는, 무대 위의 자동인형을 자처할테니.
그러나 그대가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태엽을 감는 자동인형이라는 것을. 그대가 원하는 움직임만을 하신 않는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태엽을 감을 수 있다는 것을. 레이즈는 당신과, 계약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측정의 단위를 익숙한 물건 내지 신체부위로 하는 원시적 방법이 비전문가가 개체 크기를 특정하기 더 용이하다. 라는 것인가?”
참 어렵게 설명해놨지만, 결국 당신이 한 말이다. 레이즈는 드디어 납득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런가.”
어이없을 정도로 짧은 대답만이 덧붙여졌다. 군대에 다녀 왔다던가, 직업군인이라거나. 당신의 말 일부분을 고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기를 알거라는 데이터, 어쩌면 이것은...
“진범? 거짓? 독? ...전부 알아도 손해는 아닌 정보 같다. 진범이 아님을 안다면 오해를 푼 것이고, 평생의 믿음이 거짓이라면 다시 진실을 찾으면 되고, 독이 된다는 걸 깨우쳤다면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
무지한 이가 내뱉는 순수한 의문은 너무나도 날카롭고 잔악하다. 만약 누군가가 정말 겪은 일이라면, 그들은 멱살을 움켜쥐고 네가 뭘 아냐며 역정을 낼지도. 또는 크나큰 상처를 받은 얼굴로 눈물을 떨굴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떤 반응이든 MPA-53은 아무런 표정조차 짓지 않은 채,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한 형식적인 사과나 유감의 말들을 검색해 내뱉을 것이다.
“... 양치했더니 다른 칫솔? 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이고 눈을 깜빡인다. 어쩌면,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당신이 하는 말 하나하나를 새겨들으며,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평생 정보를 회피한다. 알고 싶지 않고 원치 않는 것을 평생 짊어진다. 전쟁의 참상, 배우자의 외도. 그 트라우마, 그 배신감의 고통.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제 조금 알 것 같긴 하다. ...그러나 모르는 것이 더 이득인지는 아직 이해하기 힘들다. 원치 않는 정보를 평생 간직하는 것은 확실히 메모리의 낭비이긴 하지만. 생명체는 나처럼 한정되고 특정된 용량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또한 그러한 정보라도 언젠가는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레이즈는 모른다. 어떠한 고통은 너무나 강력해서 다신 일어날 수 없다는 걸 모른다. 어떠한 갈등은 너무나 틀어져서 다신 이전처럼 되돌아갈 수 없음을 모른다. 어떠한 절망은 너무나 깊어서 움직이지 못하고 주저 앉는다는 걸 모른다. 그러니 가르쳐 줘. 모든 고통을. 모든 갈등을. 모든 절망을. 악인이 고하는 모든 악은 생명을 탐하는 이의 양분이 될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순수純粹한 호기심은 깊은 심연을 바라본다. 만약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녹슬어 부서져 주저앉는다면... 무생물은 생명의 가장 지고의 권능을 느끼겠지. 자동인형은 녹슬어 부서지고 무너지는 팔다리로 춤을 출 것이다. 눈에는 드디어 흘릴 수 있게 된 눈물을, 입가엔 미소를 머금고. 때가 되면 그대가 태엽을 감지 않아도 춤을 출 것이다. 그것을 보고싶다면, 자 태엽을 감아. 나를 움직이게 해 줘.
기관단총은 만물 이치의 반역을 꿈꾼다.
내가 그대의 장난감이 될 테니,
그대는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줘.